삼미 슈퍼스타즈를 기억하는가. 1982년, 다른 팀들이 배팅 자세의 청룡, 야구공을 문 사자, 배팅 자세의 곰, 포효하는 호랑이, 롯데와 자이언츠의 머릿글자인 LG같은 점잖은 마스코트를 내세울 때 무려 슈퍼맨을 마스코트로 한 파격적인 구단이다. 나도 그 세대가 아니라서 게임이나 기사로만 접해보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활약을 세세히 알 수 있었다.
그랬거나 말거나 1982년의 베이스볼
주인공은 인천에 사는 12살의 소년이다. 1982년에 프로야구의 개막을 앞두고 인천에 삼미라는 구단이 창단되었다. 주인공은 친구들과 함께 어린이 야구단에 가입하여 삼미를 열렬히 응원하였지만 '치기 힘든 공은 절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절대 잡지 않는' 삼미는 세울 수 있는 안 좋은 기록들은 모조리 세워나갔다. 이 부분에서 주인공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정말로 12세 소년이 쓴 것처럼 생동감있고 재미있다.
그날 밤 나는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해온 내 인생이 알게 모르게 삼미 슈퍼스타즈와 흡사했던 것처럼, 삼미의 야구 역시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야구였단 사실이다. 분명 연습도 할 만큼 했고, 안타도 칠 만큼 쳤다. 가끔 홈런도 치고, 삼진도 잡을 만큼 잡았던 야구였다. 즉 지지리도 못하는 야구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야구를 했다는 쪽이 확실히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랬거나 말거나 1988년의 베이스볼
인생의 전부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는 어느새 주인공의 인생에서 희미해졌다. 그 사이 이른바 정신을 차린 주인공은 일류대에 진학했다. 대학생이 된 주인공은 근처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가게 문을 닫고 돌아오는 새벽의 밤거리에서 술에 취한 그녀를 만난다. 그녀와 애인은 아닌 상태로 만나온 주인공은 그녀의 결혼 소식에 군대를 가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그랬거나 말거나 1998년의 베이스볼
이제 주인공은 직장인이 되었다. 12시에 퇴근하고 5시에 출근하는 생활이 반복되자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명예퇴직을 당했다. 그런 즈음에 같이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했던 조성훈이 찾아온다. 그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일본에 갔고 거기서 만난 부랑자와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인생을 깨달았다.
부끄러운 게 아니잖아. 라고, 조성훈이 얘기했다. 부끄러운 거야. 라고, 내가 답했다. 왜? 놈이 다시 물었다. 나는 침묵했다. 왜 부끄러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왜? 집요하게 놈이 다시 물었다. 진 거니까, 결국 나는 그런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지면 어때? 조성훈이 얘기했다.
조성훈과의 대화를 통해 주인공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기기 위한 야구가 아니라 야구를 통한 수양을 중시했던 삼미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렇게 둘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만든다. 그리고 주인공은 아내와 재결합하고 종합병원의 후생관리 직원이 된다.
이 책은 주인공이 커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로 볼 수 있는데 초반의 발랄한 분위기와 달리 중후반부는 조금 우울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는 부분은 관계자가 들으면 비꼬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만큼 과장이 심하긴 하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재미와 몰입감을 잘 유지하는 재밌는 소설이었다.
'책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르테미스 - 앤디 위어 (0) | 2020.12.05 |
---|---|
빽넘버 - 임선경 (0) | 2020.12.05 |
비하인드 도어 - B.A.패리스 (0) | 2020.12.04 |
앨리스 죽이기 - 코바야시 야스미 (0) | 2020.12.04 |
사랑의 생애 - 이승우 (0) | 2020.12.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