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살던 집 앞에 신호등이 하나 있었다. 건너야 하는 길은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이고, 옆에는 왕복 8차선의 대로로 구성된 길이었다. 당연히 대로의 직진 신호는 무척이나 길었는데, 그에 비해 아주 잠깐의 보행신호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차도 사람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곤 했었다. 이 책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느티나무 사거리의 상황 또한 비슷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신호를 움직일까 하는 것에 수학이 숨어 있다.
이 책의 다음 장에는 교차로에서 빨리 지나가는 법과 고속도로에서 밀리지 않는 법을 설명한다. 그 방법은 바로 앞차와의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가 멈춰있다 출발할 때 앞차와 동시에 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반응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간격이 짧을수록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고속도로에서는 앞차와의 간격이 짧으면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 나도 밟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간격을 둔다면 이런 반응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과연 가능한 방법일까 하는 의문이 있긴 하지만.
여기까지가 무려 0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도입부를 읽고 책의 나머지 부분에도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뒤로 갈수록 점점 기호와 그래프가 등장하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여행 경로를 짧게 하려면 꼬인 길을 풀어내야 한다는 내용까지는 흥미롭지만, 프라이팬에 계란을 몇 개나 올릴 수 있는지를 그림 그려가면서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겨우 2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달걀을 구워보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또 이론으로만 도배된 책은 절대 아니다. 수식이 어려우면 스킵하고 내용만 읽으면 쉽게 읽을 수 있다. 에필로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수학을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네?'라는 생각을 했기를 바란다는 말이 있는데, 현실에서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조금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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