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여러분의 할머니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저자는 10년 전, 인공 비료가 인류를 구한 이야기를 듣고 '인류를 바꿨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과학 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사회, 역사, 정치, 철학과 묶은 잡탕 같은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과학 기술은 우리의 삶을 떠받치고 있지만 대중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자주 접하지 않아서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실제로 어렵기도 하니까. 자신이 문과생임을 과감하게 밝힌 저자는, 이 책이 아주 쉬운 책임을 강조한다.
큰 기대 없이 읽었는데 실제로 아주 쉬우면서도 유익한 책이었다. 흥미를 끄는 요소들도 많이 있고 공부를 하는 것 같은 부담감도 없다.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재미 요소가 거의 사라졌는데, 실제 책은 훨씬 재미있다고 보면 된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이야기를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난다. 18세기 후반 영국의 통계학자 맬서스의 말이다. 하지만 인류는 여전히 살아남았는데 질소를 찾아 나선 과학자들의 치열한 노력 덕분이다.
질소는 식물이 성장하기 위한 필수 에너지 중 하나다. 지구 대기의 78%가 질소지만 농업에 사용하려면 고정할 필요가 있다. 여러 연구자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을 때 독일의 프리츠 하버가 암모니아 합성에 성공한다. 하버의 연구 덕분에 인공 비료를 만들 수 있었고 수많은 인류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바로 1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독가스를 발명한 인물이다. 하버가 완성한 질소 고정은 인류를 기적적으로 구하고 극단적으로 죽였다.
너와 나의 연결 고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다. 무려 8,848m의 해발 고도를 자랑한다. 그런데 에베레스트는 19세기 이전까지는 3,658m 짜리 평범한 산에 불과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킬리만자로(5,895m)였다. 19세기 에베레스트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답은 아무 일도 없었다. 단지 해발 고도가 적용되었을 뿐이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표준 단위는 프랑스 혁명과 함께 만들어졌다. 파리 과학 아카데미는 적도에서 북극점까지의 거리를 기준으로 미터를 발표했다. 현재, 세계 206개국 중 단 3곳을 제외한 203개국이 미터법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원유 거래는 배럴로 이루어지며, 비행기를 타면 늘 마일리지를 적립한다.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는 세 나라 중 한 곳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현재 공인된 기본 단위는 시간은 재는 초, 길이를 재는 미터, 무게를 재는 킬로그램, 전류의 세기를 측정하는 암페어, 온도는 재는 켈빈, 입자 수를 세는 몰, 빛의 광도를 표시하는 칸델라 총 7개다. 7개 기본 단위 중 초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절대영도 상태인 세슘-133 원자의 바닥상태에 있는 두 개의 초미세 에너지준위의 구조 사이를 전자가 이동할 때 흡수 방출하는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다른 단위들의 정의도 비슷한 느낌이라 보면 된다.
지금은 플라스틱 시대
'당구공을 만들 새로운 물질을 가져오면 1만 달러를 주겠소' 1863년 미국의 한 신문에 실린 광고다. 초창기 당구공은 나무나 돌을 깎아 만들었는데 16세기부터 코끼리 상아로 당구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세기 코끼리 개체 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해 가격이 폭등한다. 결국 상이를 대체할 다른 물질을 찾기 시작하고, 하야트가 셀룰로이드라는 물질을 만들어낸다. 최초의 플라스틱이 탄생했다.
플라스틱의 큰 성과 중 하나는 합성섬유의 등장이다. 나일론 칫솔은 위생 상황을 크게 개선했고 나일론 스타킹은 여성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폴리에스터는 현재 생산되는 섬유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값비싼 최신 기능성 의류 역시 대부분 합성섬유다. 모두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의 최대 단점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미 20년 전에 전도성 플라스틱이 개발됐다. 최근의 접는 스마트폰 등은 이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기술이다. 다른 문제는 환경 오염인데 안타깝게도 아직 해결 방법이 없다. 썩는 플라스틱인 바이오 플라스틱 기술이 성장하고 있지만 썩는 플라스틱을 플라스틱이라 할 수 있을까? 일반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니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허세가 쏘아 올린 작은 별
러시아의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는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를 보고 우주선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우주선 연구를 시작한 그는 다단식 로켓에 관한 논문을 쓰게 되고, 레닌은 그를 영웅으로 치켜세운다.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했던 소련은 미국 본토를 곧바로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발사체 개발에 돌입하고 우주 로켓을 만들기 시작한다.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고, 떠돌이 개 라이카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도 쏘아 올린다. 이어서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 1호 역시 우주로 내보낸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은 가가린은 '지구를 푸르다'라는 위대한 말을 남겼다.
소련의 뒤꽁무니만 쫓던 미국은 유인 달 착륙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폴로 11호가 달을 향해 날아가고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의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달 착륙 이후 미국과 소련의 입장은 완전히 뒤바뀌어서 미국이 치고 나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자금도 줄어 끝내 위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예산이 줄어들자 소련의 우주개발은 '가성비'라는 특징을 띄게 된다. 위성을 재활용하는 방법도 소련이 최초로 고안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민간 우주 개발 업체 '스페이스X'는 재사용 로켓을 사용해 우주선을 우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소련의 허세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가성비의 우주 개발 시대를 열었다.
기상 무한 육면각체의 비밀
기상청 체육대회에 비가 온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비싼 슈퍼컴퓨터를 사줘도 매번 틀리는 기상청을 욕하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기상청의 예측 정확도는 90%가 넘는다. 1년 내내 비가 안 온다고 예보해도 85%의 정확도가 나오는 건 함정.
일기예보의 정확도는 기상위성이 나오기 전과 후로 나뉜다. 기상 위성은 보통 정지 궤도에 위치해 있는데 지구에서 봤을 때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 같아서 정지궤도라 부른다. 실제로 정지해 있는 것은 아니고 36,000km 상공에서 11,000km 속도로 돌고 있다. 기상위성 덕분에 하늘의 전체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기상 예측을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엄청나게 많고, 먼 미래일수록 오차가 누적되기 때문에 100%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이 기후를 조절할 수는 없을까? 기상 조절 기술은 현재 60여 개국에서 사용 중이고, 중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비 소식이 있자 베이징 주변으로 미사일을 쏴서 미리 비를 내려버렸다. 우리나라도 평창 올림픽 기간에 경기장 컨디션을 위해 인공강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상 조절 기술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과연 기상청 체육대회 때 비가 왔을까? 1993년과 1994년 2년 연속 기상청 체육대회에 비가 왔다는 신문 기사가 남아 있다. 하지만 체육대회 같은 행사는 1분기 전에 계획하기 때문에 일기 예보와 무관하다는 것이 기상청 관계자의 답변이다. 어쨌든 비가 오긴 왔었다.
살아 있는 해커들의 밤
하루 일과를 돌이켜보면 일과 수면을 빼고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스마트폰 혹은 컴퓨터일 것이다. 하지만 평생 인터넷을 사용하면서도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에 단 한 번도 돈을 낸 적이 없다. 이는 모든 것을 공유하기 바랐던 해커(예전에는 능력 있는 프로그래머를 해커라 불렀다.)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스톨먼이라는 프로그래머가 있다. 그는 심볼릭스가 자신의 무료 프로그램을 조금 수정해서 유료로 공개한 것에 분노하여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을 설립하고 GNU(GNU is Not Unix) 선언문을 발표한다. 또한 GPL라이선스를 발표하는 데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사용하되 사용한 프로그램 역시 공개하라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이를 보고 '새로운 형태의 공산주의'라고 비난했다.
GNU의 결정적인 문제는 모두 Unix를 기본 OS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991년 스웨덴의 리누스 토발즈가 OS 커널을 GPL라이선스를 달고 공개한다. 이 OS가 바로 리눅스다. 자체 OS가 없던 GNU는 큰 관심을 보이고 1994년 완성된 형태의 리눅스 1.0이 발표된다. 요즘은 상용 서버에서도 유닉스보다 리눅스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럼 오픈소스는 어떻게 돈을 벌까? 우선 관리와 교육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 속도가 생명인 기업들은 대부분 이런 유지 보수 계약을 맺는다. 두 번째 방법은 후원이다. GNU재단의 경우 소프트웨어 기업들에 불만이 있던 IBM, HP 같은 하드웨어 기업들의 후원을 받았다. 가장 익숙한 광고 수익이 있는데 모바일 게임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생각해보면 쉬울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유전자의 가벼움
유전학의 시초는 19세기 그레고어 멘델로 보고 있다. 수도사였던 멘델은 완두 콩을 키우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멘델의 유전 법칙을 발견했다. 첫째, 유전자에는 우성인자와 열성인자가 있어서 우성인자만 발현된다. 즉 빨간색 꽃과 하얀색 꽃을 교배한다고 분홍색 꽃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각각의 대립형질은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동그란 노란 씨와 울퉁불퉁한 녹색 씨를 교배하면 색은 색대로 모양은 모양대로 우성인자를 따라간다.
모든 생물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 속에 핵이 있고 핵 안에는 46개의 염색체가 응축되어 있다. 염색체 속에는 32억 쌍의 DNA가 포함되어 있고 이 중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2%의 묶음을 유전자라 부른다. DNA는 4가지 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앞 글자를 따서 A, G, C, T로 쓴다. 개별 인간의 DNA는 99.7%가 같다. 0.3%에서 나와 타인의 모든 차이가 발생한다. 침팬지의 DNA는 인간과 98.8% 같고, 초파리도 60%, 바나나도 절반이나 같다.
한 생물이 가지는 유전 정보를 통틀어서 게놈이라고 부른다.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되어 빠르고 정확하며 저렴하게 인간 DNA 염기 서열 분석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원인을 알 수 없던 질병 중 일부가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유전병임을 알게 되었고, DNA를 수정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유전자 가위다. 우리 몸은 DNA가 손상되면 바로잡는 특성이 있는데 이를 이용한 것이다. DNA를 유전자 가위로 자르고 추가하고 싶은 DNA를 삽입하면 우리 몸은 잘린 DNA를 복구하면서 삽입된 DNA를 흡수한다. 현재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카스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제 인간 유전자 편집에 대한 문제가 남았다. 인간 유전자 편집은 체세포냐 생식세포냐, 치료 목적이냐 강화 목적이냐로 분류가 가능하다. 치료 목적의 체세포 수정은 큰 논란이 없을 것이다. 강화 목적의 체세포 수정 역시 피부관리나 성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식세포 수정은 아직 논란이 많다. SF 소설에서 나 보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인류에겐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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