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일상생활에서 쓰게 되는 글보다는 소설에 특화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저자 스스로도 무술 교본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만큼 자세하고 전문적이다. 나는 소설을 쓰거나 작가가 될 것은 아니라서 원칙들을 기억하며 읽진 않았지만, 작가를 꿈꾸고 있다면 원칙에 따라 글을 써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27가지 원칙 중에 내용이 약하거나 중복된 느낌이 드는 원칙들도 없진 않은 것이 살짝 아쉽긴 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첫 번째 원칙은 '망치를 내리쳐라'다. 이 원칙은 뒤에서도 여러 번 언급될 만큼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 할 수 있다. 망치를 내리친다는 것은 주인공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사건의 발생을 의미한다. 그 사건은 놀라워야 하고 긴급성이 있어야 하며 관객의 마음에 극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적절한 배경을 만들고 망치를 내리쳤다면, 출발선에서 뛰쳐나간 셈이고 이야기의 출발부터 결말까지 선로를 깐 셈이다.
이야기를 가장 간단히 정의하면 '극적 질문을 제시하고, 거기에 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지의 제왕은 전체적으로 '프로도가 반지를 파괴하게 될까?'라는 질문으로 묶여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전체에 불을 붙이는 지배적인 질문을 '극적 중심 질문'이라고 한다. 극적 질문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독자들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신경 쓰게 만드는 질문들로 인해 불이 붙는다.
등장인물은 최대한 머리를 굴려야 한다. 이는 등장인물의 지능지수가 낮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 수준에서' 지능을 최고로 발휘하여 행동하라는 것이다. 영화 <덤 앤 더머>에서 로이드는 한 여인에게 홀딱 반해서 자기감정을 고백하는데, 그녀는 로이드가 자신의 마음을 얻어낼 확률을 100만 명 중의 한 명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로이드는 "그러니까 지금 저에게 기회가 있다는 말이네요!"라고 외친다. 이 대사는 로이드가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자기 수준에서 가장 천재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장르는 각자 장르적 관습을 가지고 출발한다. 살인 미스터리에는 살인자, 피해자, 탐정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관습은 장르의 기본 구성 요소이지 클리셰가 아니다. 해산물 스파게티에 해산물이 들어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르적 관습은 필수 요소이다. 머리를 다 짜내고 진정성 있게 이야기를 쓸 때는 관습이 나타난다. 반면 클리셰는 영혼 없이, 마음 없이, 머리를 쓰지 않고, 부주의하게 쓸 때 나타난다. 원칙을 따르되, 거기에 구애받지 말라.
생물학자 E. O. 윌슨은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할 수도,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수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유발 하라리는 이야기가 문명을 건설하는 데 필수 요소라고 주장한다. 이야기는 우리 신념에 영향을 미치고 상처를 치유해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이야기들이 주변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 이야기들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그런 이야기를 나도 하나쯤은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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