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인문

클루지 - 개리 마커스

by dwony26 2023. 2. 27.
반응형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한다. 아폴로 13호의 우주 비행사들이 비닐봉지와 마분지 상자, 절연 테이프, 양말 한쪽으로 고장 난 이산화탄소 여과기 대용물을 만들거나 맥가이버가 절연 테이프와 고무 매트로 신발을 급조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 신체에도 클루지가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척추는 두 발 동물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 네발짐승의 척추에서 불완전하게 진화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요통에 시달리고 있다.

 

맥락과 기억

스카이다이빙 사망사고의 약 6퍼센트는 낙하산을 펼치는 줄을 잡아당기는 것을 잊어서 발생한다고 한다. 호흡기의 산소량을 점검하는 것을 잊는 잠수부들도 있으며 문이 잠긴 차 안에 무심코 아기를 두고 내리는 부모도 적지 않다. 이렇게 우리의 기억이 허술한 이유는 인간의 기억 체계가 '우편번호 기억'이 아니라 '맥락 기억'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기 위하여 맥락이나 단서를 사용하는데 그 정보가 뇌 속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맥락 기억은 모든 기억을 똑같이 취급하는 대신에 우선순위를 매긴다. 그래서 자주 일어나는 것, 최근에 필요로 했던 것,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 이전에 중요했던 것 등 우리에게 유용할 가능성이 큰 정보를 가장 빨리 머릿속으로 불러낸다. 하지만 맥락 기억의 고유한 단점은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종종 뒤섞여리는데 지금 배운 것이 이전에 배운 것에 방해가 될 수도 있고 이전에 알고 있던 것이 어떤 것을 새로 배우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오염된 신념

우리가 어떤 신념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진화의 최근 산물이다. 하지만 최근의 것이라고 해서 여러 결함이 수정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인간이 신념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무계획적인 진화의 흉터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으며 감정, 기분, 욕구, 목표, 사리사욕 따위에 오염되어 있다. 이것은 결코 하찮은 문제가 아닌데 신념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불완전한 신경 도구 때문에, 가정 불화와 종교 분쟁과 심지어 전쟁까지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 후광효과 (halo effect) : 한 측면에서 긍정적인 느낌을 받으면 그것을 자동적으로 일반화해서 다른 속성들까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

- 갈퀴효과 : 부정적인 특성을 발견하게 되면 나머지 속성들도 부정적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경향

- 초점 맞추기 착각 (focusing illusion) : '행복'과 '데이트 횟수' 두 질문의 순서를 바꾸면 행복에 대한 판단이 데이트 횟수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경향

- 닻 내림과 조정 (anchoring and adjustment) : 무작위 숫자를 뽑게 하고 숫자와 아무 상관이 없는 질문을 던졌을 때 질문의 답이 숫자의 영향을 받는 현상

- 단순한 친숙 효과 (mere familiarity effect) : 자신에게 친숙한 것을 좋은 것이라고 믿는 경향

-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 : 신념을 위협할 만한 것보다 신념에 잘 들어 맞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

- 동기에 의한 추론 (motivated reasoning) :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싶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

 

인간이 듣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애당초 지각을 위해 사용되던 기제로부터 신념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지각의 경우에는 우리가 보는 것의 상당 부분이 참이다. 하지만 언어의 세계는 시각의 세계보다 훨씬 덜 믿을 만하다. 이상적으로 따지자면 정보를 입수해 참이라고 가정한 뒤 시간이 있으면 평가하는 지각의 기본 논리는 신념이 언어를 통해 전달될 경우에 순서를 바꿔야 한다.

 

선택과 결정

인간의 선택은 경우에 따라서 완전히 합리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찻잔을 향해 손을 뻗을 때 많을 결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결정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기까지 진화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진화의 비교적 최근 산물인 의식적 의사결정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의 결정은 더 형편없는 것이 될 때가 많다.

 

우리의 뇌는 100달러를 지출할 때 25달러를 절약한 것은 좋은 거래라고 생각하지만 1000달러를 지출할 때 25달러를 절약한 것은 어리석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100달러짜리 여행 티켓과 50달러짜리 여행 티켓을 같은 날짜로 구매한 경우 50달러짜리 여행이 더 재미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절반 이상은 100달러짜리 여행을 선택한다. 500달러에서 시작해 조금도 깎아주지 않는다면 고객은 투덜대며 가게를 나설 테지만 600달러의 값을 부른 후 100달러를 깎아 주면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서문에 나오는 클루지의 개념은 매우 흥미로웠으나 본문의 내용은 심리학 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예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현상들을 클루지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으나 그렇게 볼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퉁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도 클루지를 이겨내는 13가지 제안을 통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은 좋았고 읽어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클루지
23살에 MIT에서 뇌와 인지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30살의 나이에 종신 교수가 된 스타 학자 개리 마커스 교수가 인간 진화의 장대한 시간을 꿰뚫는 역사적인 통찰을 통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의 마음을 조망하는 『클루지』. 생각하는 사람으로 잘 살기 위한 소중한 단서, 불완전하지만 고귀한 마음을 최대한 활용하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저자는 인간의 마음이 세련되게 설계된 기관이라기보다 클루지(kluge), 곧 서툴게 짜 맞춰진 기구라고 주장한다. 생존 때문에 최선의 선택을 방해받는 진화의 법칙, 즉 진화의 관성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과 세계는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억, 신념, 선택, 결정, 언어, 행복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정신 영역을 두루 살피며, 우리들의 세계 곳곳에서 현명한 일상을 방해하는 생각의 함정을 파헤친다. 우리의 도덕적 선택은 왜 종종 도덕적이지 않으며, 도덕적 직감은 왜 이토록 허술한지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언어의 비밀을 파헤치며 무엇이 우리의 소통을 방해하는지 밝혀낸다. 이어서 우리 내면의 클루지를 활용해서 어떻게 우리들의 세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지, 생각의 함정에서 생각의 무기를 찾아내는 지혜를 전한다. 경험적 과학적으로 증명된 13가지 제안을 담아 생각의 함정을 피하고 생각의 무기를 가다듬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저자
개리 마커스
출판
갤리온
출판일
2008.11.24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