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의 유럽 도시 기행 2권이다. 1권은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였는데 2권은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편이다. 1권의 경우 가 본 도시가 두 곳이나 되었는데도 술술 읽힌다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2권은 다 안 가본 곳이라 고민을 하다 읽어보았다. 1권이 어렵다는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닌지 서문에 저자가 고민한 흔적이 담겨 있었다. 저자가 제공하는 콘텍스트의 가치를 이해하려면 텍스트를 아는 것이 중요한데 도시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검색해가며 읽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냥 읽고 사진을 찾아보면서 다시 읽었는데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나는 도시의 건축물, 박물관, 미술관, 길, 광장, 공원을 '텍스트(text)'로 간주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콘텍스트(context)'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도시는 콘텍스트를 아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주며, 그 말을 알아듣는 여행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깊고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소화하기 어렵다거나 거기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하는 독자가 적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무엇을 크게 바꿀 수는 없었다. 평범한 한국인 단기 여행자와 같은 방식으로 다니고, 그런 여행자에게 유익한 정보를 추려 제공할 목적으로 유럽도시기행 시리즈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빈, 내겐 너무 완벽한
빈의 이름난 건축물과 역사문화공간은 도심 순환도로인 링-슈트라세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고 한다. 중세의 빈은 대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었으나 1857년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 의해 대성벽이 해체되고 링이 탄생했다. 링의 중심에는 슈테판 성당이 있다. 슈테판 성당은 원래 12세기에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었는데 큰 불이 나서 무너졌다. 그 자리에 14세기부터 새로 성당을 지었는데 종교 건축양식의 유행 변화를 받아들여 중앙 회랑과 지붕을 고딕 양식으로 바꾸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흔적은 성당 전면에만 흐릿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빈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 비엔나커피와 가장 흡사한 건 아인슈패너인데 요샌 한국에서도 아인슈패너란 명칭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가장 대중적인 커피는 멜랑쥬인데 앞에 '카이저' '마리아 테레지아' '엘리자베트' '모차르트' 등 대단한 사람의 이름이나 직위가 들어간 커피를 주문하면 코냑, 럼, 위스키처럼 독한 술이 20ml 들어간 커피를 준다고 한다. 저자는 이 커피를 '비엔나커피'라고 불렀다.
빈의 예술사 박물관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 막스 쿠르츠바일 등 거장들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예술사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체제시온에서는 초대 이사장이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스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빈의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이는 모차르트와 시씨라고 한다. 베토벤, 하이든, 슈베르트, 브람스도 빈에서 활동했지만 빈과 모차르트 사이에는 특별한 것이 있는 듯하다고 말한다. 시씨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부인으로 비운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자기 다운 삶'을 추구했던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부다페스트, 슬픈데도 명랑한
부다페스트 편에서 저자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빈 만큼 볼거리가 많지 않아서일까?) 헝가리 사람들은 머저르족의 후손이며 정식 국호 역시 머저르공화국이라고 한다. 헝가리어는 우랄어족에 속하며 인도유럽어에는 좀처럼 찾기 힘든 'ㅓ' 발음이 있다고 한다. 이름을 쓰는 법도 우리나라처럼 성을 앞에 둔다. 프란츠 리스트를 헝가리 사람들은 리스트 페렌츠라고 부르는 식이다. 헝가리 왕국은 13세기 중반 몽골 침략 때 치명상을 입었으며 15세기 후반부터 1918년까지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살았다. 이후 나치 독일과 소련의 침략과 지배를 겪었으며 1990년에 처음으로 독립한 민주공화국이 되었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보니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영웅 광장·리스트 기념관·테러하우스에서 민족적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헝가리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열등감과 자부심, 피해 의식과 책임 의식 사이에서 오래 방황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그게 무언지 느낌으로 안다. 우리 민족은 자신을 지키는데 능하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문화·역사가 있다. 우리 민족은 대륙의 중국에 흡수당하지 않았고 해양 세력 일본의 침탈을 이겨냈다. 머저르 민족도 슬라브 세력권의 한가운데에서 5백 년 넘는 인고의 세월을 견딘 끝에 독립 공화국을 세웠다. 두 민족 모두 '보수'에 능하다. 그런 민족이 이민족의 지배를 받은 것은 혁신에 소극적이어서였다.
프라하, 뭘 해도 괜찮을 듯한
프라하에서 저자는 다시 관광 모드가 되었다. 프라하는 해 뜨기 직전과 해 진 직후 사진이 잘 나오는데 웨딩 화보를 찍는 중국인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프라하는 빈이나 부다페스트보다 훨씬 작아서 '프라하 카드'를 살 필요가 없다고 한다. 볼거리가 대부분 도심에 있었고 긴 거리를 한 번에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드물어 걸어 다니는 게 더 편리하다고 한다.
프라하의 자랑인 틴 성당은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에 비하면 '오래되고 아담한 시골 성당'에 지나지 않지만 참혹했던 종교전쟁의 상흔을 품고 있는 특별한 성당이라고 한다. 틴 성당 주변에는 민가들이 빼곡한데 도시를 과격하게 개조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한다. 파리의 노트르담과 빈의 슈테판 성당 주변도 중세에는 민가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지금은 다 철거되고 도로가 생겼다고 한다. 보헤미아가 수많은 전쟁에 휘말렸는데도 프라하는 참화를 피해서 구시가의 중세 건축물과 신시가의 바로크 스타일 집들이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어서 '아무데서나 사진을 찍어도 화보가 된다'는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프라하의 핫스팟은 카렐교라고 한다. 카렐교는 폭 10미터, 길이 5백 미터 정도인 보행자 전용 다리인데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다리 양편에는 서른 개의 조각상이 줄지어 서 있는데 원본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복제품을 설치해 둔 것이라고 한다. 그 중 네포무츠키 청동 조각상은 영험한 힘이 있다는 소문이 나서 체코 사람들이 그 앞에서 소원을 빈다고 한다. 버스킹도 하고 화가도 있는 광장 같은 장소라고 하니 프라하를 여행하게 된다면 꼭 들러 보고 싶었다.
프라하성지구에는 황금골목이라는 곳이 있다. 파리의 몽마르트처럼 임대료가 저렴해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는데 예술가 또는 예술가의 지인이 더러 섞여 있었다고 한다. 황금골목을 관광의 핫플레이스로 만든 사람은 프란츠 카프카인데 파란색으로 칠한 '카프카의 누이 집'은 프라하의 가장 인기 있는 관광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은 없는데 프라하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드레스덴, 부활의 기적을 이룬
마지막 여행지는 독일의 드레스덴이다. 저자가 드레스덴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드레스덴 폭격' 관련 보도를 본 이후라고 한다. 영국과 미국 공군은 1945년 드레스덴을 '융단 폭격'했는데 도심 반경 3킬로미터 안에 있던 모든 것이 부서지고 불탔다고 한다. 나치 정부는 사망자만 20만명이라고 비난했는데 시신을 수습한 사망자만 3만 5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드레스덴 폭격 50주년인데도 독일 정부는 희생자 추모를 하지 않았는데 저자가 독일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독일은 그보다 더 못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아무도 내놓고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드레스덴은 '가해자의 몸에 남은 상흔'이었다.
드레스덴의 시민들은 성모교회를 재건함으로써 부활의 서사를 완성했다. 성모교회는 부실 건축물이어서 끊임없이 보수공사를 했는데 1945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최후를 맞았다. 동독 공산당 권력자들은 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려고 했으나 돈이 없어서 하지 못했고, 동서독 통일 이후 기부금 모금을 통해 복원되어 2005년 공식 부활했다. 성모교회는 날카로운 직선이나 뾰족한 모서리가 없는 교회이며 시민의 자유와 독일의 통일을 상징하는 교회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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