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5분의 1을 발견한 분류학자다. 1906년 지진으로 그가 수십 년 동안 수집한 표본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을 때, 조던은 절망하지 않고 이름표를 물고기의 몸에 꿰매 붙이는 기지를 발휘한다. 조던의 이 일화를 접한 저자는 처음에는 무관심했지만 점차 그의 삶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 책은 과학 전문 기자인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다룬 책이다. 그리고 그의 삶에는 엄청난 반전이 존재한다.
1873년, 당대의 가장 유명한 박물학자였던 루이 아가시는 페니키스 섬에서 자연사 수업을 여는데 파릇파릇한 코넬대학 졸업생이던 데이비드는 이 수업에 참가하게 된다. 아가시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의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윈은 분류학자들이 본질적으로 불변의 것이라 믿었던 분류 단계가 인간의 발명품일 뿐이라고 선언했는데, 루이 아가시는 죽는 날까지 다윈의 생각에 반대했다. 하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종들 사이에 불확실한 회색 지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승과 의견을 달리 하기로 한다.
분류학 용어로 모든 표본을 모식(type)이라고 하는데, 최초의 신성한 모식은 완모식(holotype)이라고 부른다. 완모식 표본은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는데 소실되어도 새로운 표본을 넣을 수 없다. 새로운 표본은 신모식(neotype)이라는 더 낮은 지위를 부여받는다.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스스로 자기 이름을 붙인 바닷물고기를 만나는데 일본 연안에서 발견하여 명명한 노말루스 요르다니라는 물고기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891년 40대 초반의 나이에 스탠퍼드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스탠퍼드 부부는 학교에 루이 아가시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고 데이비드도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나이가 40대 후반에 접어들 무렵 제인 스탠퍼드와의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한다. 제인은 결국 스파이를 심어 데이비드를 감시하기에 이르렀는데, 하와이를 여행 중이던 제인이 갑자기 사망한다. 검시 결과 스트리크닌이라는 독극물이 발견되어 독살로 결론이 내려졌는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사건을 재검사하기 위해 큰돈을 들여 새로운 의사를 고용하고, 부적절한 음식의 과다 섭취로 인한 심부전이라는 결론을 얻어낸다. 하지만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쓴 책에서 조던이 성가신 물고기를 잡을 때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은 독이고, 추천한 종류는 스트리크닌이라는 내용을 발견한다.
조던은 물고기를 수집하러 여행을 다니는 동안 이탈리아 알프스의 아오스타라는 마을에서 충격적인 것을 목격했다. 아오스타는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식처 같은 도시였는데, 조던은 이 마을이 루이 아가시가 주장했던 동물의 퇴화를 보여주는 증거라며 염려했다. 그래서 그는 전 세계에세 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라고 권고하는 책을 썼는데, 그의 과학적 권위에 힘입어 '우생학'이라는 단어가 미국 땅에 널리 보급된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한 종을 강력하게 만들고, 그 종이 미래까지 지속하게 해주는 것으로 '변이'를 꼽았다. 다양성이 있는 유전자 풀이 얼마나 건강하고 강력한지, 서로 다른 유형 개체 간의 이종교배가 그 자손에게 얼마나 큰 '활력과 번식력'을 만들어 주는지 종의 기원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의 힘을 칭송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죽는 날까지 열광적인 우생학자로 남았다. 그리고 그의 노력의 결과로 수만 명의 여성들이 강제로 불임화 수술을 당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세계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고 있던 그의 말년에 세계를 돌며 전쟁의 위험을 경고하는 일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가장 좋은 자질을 지닌 남자들이 싸우러 나가 죽으면 '부적합한' 자들이 남아서 번식을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우생학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자연은 또 하나의 속임수를 감춰두고 있었다. 캐럴 계숙 윤에 따르면 조류, 포유류, 양서류는 존재하지만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폐어는 연어보다 소에 훨씬 가깝다. '어류'가 진화적 범주라는 말은 '빨간 점이 있는 모든 동물'이 한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거나 산에 사는 산염소, 산독수리, 산사람이 같은 범주에 포함된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라는 것이다. 상상 속 사다리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제일 윗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어류'라는 범주는 우리의 망상이었고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자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우주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서 그가 사랑하는 물고기를 빼앗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느낀 만족감 외에, 하나의 범주로서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일일까? 이 물음에 대해 저자의 친구인 헤더의 멋진 비유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
헤더는 하고많은 사람 중에 코페르니쿠스를 예로 들었다. 그 시대 사람들이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면서 움직이고 있는 게 별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에 관해 생각하고, 별들이 매일 밤 그들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천구의 천장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서서히 놓아버릴 수 있도록 수고스럽게 복잡한 사고를 하는 것을 중요한 일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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