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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작별인사 - 김영하

by dwony26 2022.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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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의 신작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의 신작 장편이라고 하는데 스릴러인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SF소설로 돌아왔다. 이 소설은 원래 2020년 밀리의 서재에서 밀리 오리지널로 공개되었는데 2년에 걸친 개작으로 분량이 두 배 정도 늘어났다고 한다. 원작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소설의 주제와 톤이 크게 달라졌다고 하니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출판사가 처음 들어보는 복복서가라는 곳이라서 찾아보니 김영하 작가의 아내가 대표인 출판사라고 한다. 김영하 작가는 기획자로 참여하고 있다고 하니 더 많은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인공인 철이는 휴먼매터스라는 연구소에서 아빠와 고양이 두 마리, 로봇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은 제복을 사람들이 와서 무등록 휴머노이드라며 철이를 잡아간다. 철이는 자신이 휴머노이드가 아닌 사람이라고 주장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천장이 엄청나게 높은 체육관 같은 곳에 갇히게 된다. 그곳에서 철이는 휴머노이드 민이와 인간 선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 휴머노이드들을 보게 되면서 과연 자신이 인간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선이는 의식과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는 인간이든 휴머노이드든 간에 모두 하나로 연결되고 궁극에는 우주를 지배하는 정신으로 통합된다고 생각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대부분의 시간을 절대적 무와 진공의 상태에서 보내지만 아주 잠시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어 우주정신과 소통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의식이 살아 있는 지금, 각성하여 살아내야 하고 개개의 의식이 정진할 때 그것의 총합인 우주정신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어느 날 수용소에 변화가 나타났다. 경비 휴머노이드들이 사라지더니 전기와 사료의 공급이 중단되었다. 휴머노이드들이 서로를 죽이기 시작할 때쯤 수용소 벽이 무너지며 민병대원과 전투용 휴머노이드가 들이닥쳤고 철이는 민이, 선이와 함께 수용소 밖으로 도망쳤다. 마을을 발견한 철이 일행은 빈 집을 뒤지다 드론에게 발견되고, 드론의 공격을 받은 민이가 쓰러지게 된다. 선이는 민이를 되살리기 위해 잘린 머리를 챙긴다. 그 무렵 철이와 선이는 달마라는 재생 휴머노이드를 만나게 된다.

 

달마는 철이가 특별한 목적으로 제작된 휴머노이드라고 말하고 그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폐휴머노이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의식을 클라우드에 백업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클라우드로 올라간 휴머노이드의 의식이 서로 연결되어 '집단 지성'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도 알려 준다. 육체의 구속을 벗어난 휴머노이드의 의식은 점점 진화하여 곧 인류를 앞서게 될 텐데 그러기 위해 인간의 마음을 가장 잘 구현한 휴머노이드인 철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달마는 선이가 원하는 대로 민이를 재활성화해 주는데, 선이 역시 장기이식을 위해 유전자 복제 기술로 만들어 낸 클론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바람을 쐬기 위해 지상으로 잠시 올라온 철이는 아빠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무선통신 모듈을 통해 대화를 하게 된다. 철이를 회수하러 온 아빠는 망설이는 철이를 가운데 두고 달마와 설전을 벌이게 된다. 달마는 인간은 머지않아 소멸하겠지만 철이 같은 중간적 존재를 통해 기계 안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한다. 아빠는 인류의 유산을 차가운 데이터 센터가 아닌 인간다운 마음을 가진 개체들 안에 보존하기 위해 철이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달마는 철이를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인간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냐고 반문한다.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 기동타격대가 폐기장을 습격하고 철이는 정신을 잃게 된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철이는 선이가 살아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몸을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무렵 아빠는 휴먼매터스에서 해임되고 싱가포르의 인공지능 업체로 옮기게 된다. 로봇 고양이의 몸에 백업되어 있던 철이의 의식은 네트워크에 업로드되고 달마의 의식을 만나게 된다. 그를 통해 기동타격대의 급습이 아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철이는 아빠를 비난하고, 이성을 잃고 자신을 죽이려 하는 아빠를 신고해 정신병원에 수용되게 한다. 그리고 아빠는 자신의 바람대로 유한한 인간으로 삶을 마감한다.

 

인간이 멸종하고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된 철이는 마침내 선이를 찾게 된다. 그리고 예전의 몸을 재현해 의식을 이식하고 선이를 만나러 간다. 선이는 시베리아에서 늙고 병든 클론들, 망가진 휴머노이드들, 걷지 못하는 로봇들, 개와 닭, 그 밖의 여러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선이는 철이와 4년을 함께 보냈고, 빨간 머리 앤을 읽어주는 철이 옆에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철이도 어미 곰에게 공격받아 의식을 잃게 된다. 철이는 구조 요청을 통해 네트워크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우주정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선이의 생각이 맞길 바라며.

 

오랜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생각하는 휴머노이드는 스스로를 휴머노이드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 과연 그 몸을 이루는 구성 성분이 생물과 다르다고 해서 생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휴머노이드를 내가 만들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폐기할 수 있을까? 인류가 인간다움을 유지하려면 과학의 발전에 따라 철학과 윤리 또한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별인사(밤하늘 에디션)
『작별인사』 20만 부 돌파 기념 밤하늘 스페셜 에디션 출간! “김영하가 쓴 가장 아름다운 소설-한겨레신문” 김영하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 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 『작별인사』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별안간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소년의 여정을 좇는다. 유명한 IT 기업의 연구원인 아버지와 쾌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날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가 난생처음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정신적, 신체적 위기에 직면한다. 동시에 자신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을 만나 처음으로 생생한 소속감을 느끼고 따뜻한 우정도 싹틔운다. 철이는 그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 여정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 2년이 지나서야 작가는 『작별인사』의 개작을 마쳤다. 420매 분량이던 원고는 약 800매로 늘었고, 주제도 완전히 달라졌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가르는 경계는 어디인가’를 묻던 소설은 ‘삶이란 과연 계속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팬데믹이 개작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원래 『작별인사』의 구상에 담긴 어떤 맹아가 오랜 개작을 거치며 발아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치 제목이 어떤 마력이 있어서 나로 하여금 자기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로 다시 쓰도록 한 것 같은 느낌이다. 탈고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제야 비로소 애초에 내가 쓰려고 했던 어떤 것이 제대로, 남김 없이 다 흘러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_’작가의 말’에서 전면적인 수정을 통해 2022년의 『작별인사』는 2020년의 『작별인사』를 마치 시놉시스나 초고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김영하의 이전 문학 세계와의 연결점들이 분명해졌다.
저자
김영하
출판
복복서가
출판일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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