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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학,수학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 - 한나 모니어, 마르틴 게스만

by dwony26 2020.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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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와 새가 서로 좋아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같이 살 보금자리를 어디에 마련하지?"
신경생물학자인 한나 모니어와 철학자인 마르틴 게스만이 함께 책을 쓸 생각이 있다고 했을 때 동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신경생물학과 철학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 채 발전해왔다. 하지만 두 저자는 각자의 연구를 거듭한 끝에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데, 바로 기억은 경험을 그저 서랍 속에 넣어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을 항상 새롭게 재처리하여 미래를 위해 유용하게 만들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회상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그다음에는 기억의 원래 버전이 아니라 변화된 버전이 저장된다. 우리가 기억 내용을 다시 살펴보는 동안에, 그 내용은 말하자면 다시 기록된다. 우리는 똑같은 장면이나 똑같은 사실을 거듭 회상한다고 여기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실은 사본들이다. 회상을 통한 다시 쓰기가 거듭되면, 그 사본들은 원본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수 있다. 모든 각각의 회상이 새로운 변화를 유발할 수 있고, 최종 버전은 항상 앞선 버전들의 계열에 속한 마지막 항일뿐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 언덕을 뛰어 내려가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기억이 있다. 실제로 본 기억일 리는 만무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들은 내용,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조합된 '조작된'기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 내용은 사실 모든 기억은 '조작된'기억이라는 이야기인데 이해가 되면서도 조금은 충격이었다. 잘 기억하려면 회상 과정에서 변형을 적게 하거나 회상 자체를 적게 하거나 인가 보다.

 

렘 꿈속에서 일어나는 '자원, 장소, 위험'의 재배열은 단지 사건들의 계열을 학습하는 것을 넘어서 지평을 확장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요컨대 렘수면의 핵심 역할은 아직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이제껏 경험한 바로부터 시험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미래를 대단히 창조적인 방식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가 기억을 저장할 때 아무렇게나 넣어 두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꺼내 쓰기 편하게 재배열하여 저장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상당 부분은 잠을 자는 동안에 이루어진다. 따라서 영화 '인셉션'의 내용처럼 꿈을 조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기억, 미래에 대한 판단을 조작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고 한다.

 

망각은 수치가 아니라 진보다. 우리 기억의 선택성은 변덕이 아니라 적절한 조치다. 요컨대 전반적으로 노화는 기억 능력의 쇠퇴가 아니라 재구성을 일으킨다. 노화한 기억은 우리의 삶을 제약하기는커녕 우리가 당면 과제들을 적절히 처리하고 해결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노화한 뒤에도 기억은 여전히 우리의 미래를 위한 협력자다.


지금까지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기억은 단순 저장이 아니라 선택하고 정리하는 과정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저장 능력은 떨어지지만 재구성하는 능력을 계속해서 향상된다. 따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내용이라고 판단하여 뇌가 정리를 해 버린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과 리뷰가 얼마 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을지 궁금하다.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상식적으로 기억은 시간과 직결된다. 철학에서는 시간보다 큰 주제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기억을 논한다는 것은 시간을 논한다는 것, 그리하여 거의 모든 것을 논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시간과 기억을 이해하는 작업에 가장 많은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는 기억이라는 뇌 기능을 단서로 붙들고 곧장 ‘사람다움’의 의미를 찾아간다. 이 책의 저자인 한나 모니어는 세포생물학적 성과를 통해 세계적인 과학자로 인정을 받았다. 2004년 독일 과학재단에서 매년 최고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라이프니츠 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한나 모니어의 박사학위 논문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에 나오는 질투에 대한 연구였다. 공저자인 마르틴 게스만은 독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철학자로 이 책에서도 기억에 대한 뇌과학 이론을 철학적 담론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저자
한나 모니어, 마르틴 게스만
출판
문예출판사
출판일
2017.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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