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작가가 태양계를 주제로 쓴 중편 SF 소설집이다. 회사 동기가 듀나의 영화 낙서판이라는 사이트를 매일 보고 있어서 듀나라는 이름을 들어보긴 했으나 다른 작가들은 다 생소했다. 게다가 SF라는 장르의 소설을 읽어본 것도 아주아주 오래되었기 때문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책을 보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책의 표지나 작가 소개에 제목의 순서대로 표시가 되어있는데 특이하게 실제 글의 순서는 반대로 되어 있다. 태양에서 가까운 행성부터 배열한 것일까?
당신은 뜨거운 별에
태양계에서 가장 뜨거운 금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탄산음료 회사와 무인자동차 회사에서 금성 탐사선을 운영하여 금성을 연구하고 있다. 조건은 트루먼 쇼처럼 금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독점적으로 중계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이다. 유진은 탄산음료 회사 소속으로 금성에 가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깨닫고 딸 마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이상한 점이란 바로 금성에 있는 것은 자신의 머리뿐이고 몸은 지구에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주복에서 주기적으로 머릿속으로 약물을 주사하여 그런 사실과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사라지게 하고 있었다. 유진과 마리는 금성에서의 결혼식을 핑계로 탄산음료 회사의 로봇들을 조종하여 무력화시키고 유진은 무인자동차 회사의 탐사선으로 도망친다는 내용이다.
외합절 휴가
두 번째 이야기는 지구와 가장 닮은 화성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화성은 지구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태양을 가운데 두고 지구와 화성이 양 끝에 위치하는 날을 외합절이라고 부르고 이때는 모든 권한을 화성에 위임한다. 김은경은 이번 외합절에 대기조로 선정이 되어 근무를 서고 있는데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한다. 바로 화성이 지구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외합절에는 대기조 근무자가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김은경의 허가를 받아야 독립이 선언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시달리고, 얼떨결에 관리 컴퓨터에 반격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만다. 김은경의 그 한마디에 화성 주위를 돌고 있던 7개의 미사일 중 1개가 지표면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 움직임을 포착한 다른 미사일들도 연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은경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움직이기 시작한 미사일은 멈출 수가 없었고 최후의 수단으로 모든 미사일이 자신을 향하도록 명령한다.
얼마나 닮았는가
세 번째 이야기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으로 향하는 우주선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로 향하던 우주선이 타이탄에서의 구조 신호를 감지하고 타이탄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우주선 안에서 작은 사건이 있었는데 위기관리 AI 컴퓨터 훈이 인격을 인간형 의체에 복사해서 인간 승무원 대우를 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소설은 AI 컴퓨터 훈의 시점으로 진행이 되는데 기계였을 때의 기억을 일부 잃은 상태다. 선원들은 이상하게 인간의 모습을 한 훈에게 적대적이고 선장인 이진서에게도 반발하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타이탄에 도착하기 전에 쿠데타가 일어나고 이진서, 훈, 남찬영을 제외한 모든 선언이 가담한다. 가까스로 그들을 제압한 훈이 깨달은 쿠데타의 원인은 이 3명만 여자라는 것. 훈에게 성차별에 대한 내용을 입력하지 않아서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선원들이 부족하여 타이탄에 보급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훈은 직접 착륙선을 타고 타이탄으로 내려가는 방법을 선택한다.
두 번째 유모
마지막 이야기는 태양에서 가장 먼 해왕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가장 혼란스럽고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태양계의 각 행성들은 어머니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의 집합체가 지배하고 있다. 어머니는 생명을 창조하고 그 생명을 위한 구조물들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사람의 욕망이 결합된 나노봇 무리인 아버지는 과거 지구를 멸망시키고 지금은 해왕성을 파괴하기 위해 오고 있다. 서린은 아버지를 파괴하고 해왕성을 지키기 위해 화성에서 왔고 아버지의 몸속으로 침투한다. 아버지의 몸 안에서 서린은 목숨을 잃지만 릴리안의 시드를 아버지의 뇌에 심는 데 성공하고 마침내 아버지는 제어력을 잃고 추락한다.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은 마지막 소설의 끝에서 두 번째 문장이다. 앞의 세 소설은 이해도 잘 되고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지막 소설은 아버지, 어머니, 시드 등등의 개념 자체가 이해가 어려워서 멍한 느낌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을 빼면 전체적으로 느낌은 비슷한데 일부러 맞추지 않았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작가들도 놀라웠다고. 아무튼 오랜만에 읽은 SF 소설의 매력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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