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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

by dwony26 2020.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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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첫 번째 작품집이다. 제목을 많이 들어봐서 예전에 읽어본 책일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새로워서 끝까지 읽었다. 총 3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쪽 2편이 이어지는 내용이고 마지막 작품은 새로운 내용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어 이어지는 내용이네?' '어 이건 새로운 내용이네?' 하고 읽었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두 번째 '만월' 제목 아래 '키친 2'라고 쓰여 있었다.

 

세 작품의 구조는 거의 동일한데, 주인공과 가까운 누군가가 죽고 그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역자는 이를 '상처 깁기'의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작품까지 읽었을 때 너무 똑같은 내용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 후기를 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매 작품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지만 같은 이야기를 여러 시점에서 쓰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옛날부터 오직 한 가지를 얘기하고 싶어 소설을 썼고, 그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질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쓰고 싶습니다. 이 책은, 그 집요한 역사의 기본형입니다.

 

'키친'에서 주인공 사쿠라이 미카게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부모님에 이어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다나베 유이치네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살펴본 곳도 부엌이다. 부엌에 대한 미카게의 사랑은 '만월'에서는 요리로 옮아간다. 유이치의 엄마인 에리코씨가 죽었을 때 유이치를 위로해 준 것은 미카게의 요리였고, 애매했던 두 사이의 관계를 진전시켜 준 것은 돈가스 덮밥이었다. 마지막 '달빛 그림자'에서는 사츠키와 히토시의 시작과 재회를 상징하는 매개체로 방울이 등장한다.

 

이 작품에 특이한 소재가 두 가지 더 있는데 바로 오컬트와 양성 구유적 요소이다. 우선 오컬트적인 요소를 보면 키친에는 남녀 주인공이 같은 꿈을 꾸는 장면이 나온다. 달빛 그림자는 조금 더 심한데 핵심 이야기가 죽은 애인과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다. 양성적인 요소는 키친에서 에리코씨가 아내가 죽은 후 성전환을 하는 부분, 달빛 그림자에서 히라기가 죽은 애인의 교복을 입고 다니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내용을 별일 아니라는 듯이 툭 던져놔서 읽다 보면 점점 특이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못 하게 된다. 역자는 이런 부분들이 요시모토 바나나 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부분이라며 멋지게 설명해 놓았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다른 작품을 읽을 때 이런 부분을 생각하며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첫 작품집인 『키친』은 그녀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여러 가지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녀의 소설에서 문제 삼고 있는 기본적인 테마인 ‘상처 깁기’를 비롯하여, 우라라란 인간형에서 볼 수 있는 오컬트적인 요소, 또 사츠키와 히라기의 관계가 보여주는 근친상간적 요소(히라기는 사츠키의 죽은 애인인 히토시의 남동생이다.), 유이치의 엄마이며 동시에 아버지인 에리코가 상징하는 양성 구유적인 요소 등, 모두가 바나나 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집 『키친』을 읽는 재미는 행복한 환상처럼 우리들의 상처를 소리 없이 감싸 안는 따스한 이들과의 만남, 동시에 요시모토 바나나 문학의 원형과의 만남에 있을 것이다.

 

 
키친
전 세계 18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요시모토 바나나의 대표작 『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는 데뷔 이래 다양한 상을 휩쓸었으며, 대중적으로도 '하루키 현상'에 버금가는 '바나나 현상'이란 유행어를 낳았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학은 기존의 일본 순수문학이 기본 덕목으로 삼았던 엄숙주의의 대극에서 출발한다. 그는 독자들에게 고전적 교양 따위는 애초부터 요구하지 않는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살아간다는 시대적(문화적) 동질감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라도 그녀의 세계에 쉽게 동참할 수 있다. 이번 책에는 아내와 사별한 후 먹고 살 길이 막막한 나머지 아들을 위해 '여자'가 되어 게이 바에서 일하는 아버지(「키친」), 죽은 애인의 세일러복(치마)을 입고 등교하는 고등학생(「달빛 그림자」), 혼자 쓸쓸해하고 있을 남자친구를 위해 멀리 떨어진 출장지에서부터 돈까스 1인분을 사 들고 2시간 동안 택시를 타고 오는 미카게(「만월」) 등, 흔히 볼 수 없는 기이한 행동들의 주인공이지만, 저자의 필치는 친숙하고 따뜻하게 그들을 그려낸다. 일상의 틈새에 숨어 있는 세계를 새롭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1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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