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사장의 책 중 가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나와 타인, 세계와의 관계를 40가지 이야기로 풀어 나가고 있는데 이야기들은 독립적이면서도 연관되어 있다. 이야기는 쉬운 내용부터 어려운 내용까지 다양하게 있는데 복잡한 내용은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쭉쭉 읽어 내려갔다.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그것 밖으로 걸어 나가서, 그것에서 벗어난 뒤, 다른 것을 둘러봐야만 한다. 그것은 비단 입시뿐만이 아니다. 전공이 되었든, 업무가 되었든, 모든 지식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이 아닌 것들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 있었던 내용인 것 같은데 별 모양을 알기 위해서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공부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이야기에서 따온 내용이다. 열한 계단의 주제이기도 하고 채사장이 항상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불편한 책을 읽어라' 여러 번 들어서 익숙하기는 해도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내용이다.
이런 상상을 했다. 만약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그래서 이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이집트로 가게 된다면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그곳에서 30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라면 말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만약 그래야 한다면 당신은 30년의 시간 동안 거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 열심히 노동하고, 재산을 모으고, 이를 기록하고, 만족하고, 아쉬워할 것인가?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그리 길지도 않다. 하지만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현재의 삶이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죽음을 인식하는 것은 현재의 삶을 더 충실하게 살 수 있게 해 준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30년뿐이라면 오늘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고 감정을 소모하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를 여행하는 것과 더불어 나만의 세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
40개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낡은 벤치를 지키는 두 명의 군인 이야기'이다. 어느 부대에서 낡은 벤치 옆에서 두 명의 군인이 24시간 동안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왜 경계근무를 서는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원인을 따라가 보니 오래전 낡은 벤치에 페인트칠을 하였는데 마르기 전에 다른 병사들이 앉지 못하도록 병사를 세워 놓은 것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었다. 살면서 이런 경우를 참 많이 만나게 되는데 '원래 그렇게 되어 있었다'라고 하면 문제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지식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잘못된 관습이 계속해서 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무심코 다른 사람을 따라서 하던 일이 낡은 벤치를 지키는 일은 아니었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대넓얕이 끝나면서 듣기 어려운 채사장의 목소리를 책으로나마 듣게 되어서 반가웠다. 내용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어도 그걸로 충분한 기분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아직도 듣지 못한 지대넓얕 마지막 화를 이제는 들어봐도 될 것 같다. 언젠가 다시 운명처럼 만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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