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건축물을 다양한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설명한 글이다. 알쓸신잡2에서 저자를 알게 되었는데 모든 현상을 건축학적으로 설명하려 해서 좀 과하다는 느낌도 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었다.
명동엔 왜 걷는 사람이 많을까?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우연성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 거리가 더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이다.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자기 주도적인 삶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고 우연성이 넘친다는 것은 우리가 도시에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거리가 더 ㅁ낳을수록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저자는 강남 거리는 걷기 싫고 명동 거리는 걷고 싶은 이유를 '이벤트 밀도'라는 것으로 설명한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강남 거리는 강남 대로가 아닌 테헤란로이다.) 즉, 상점이 많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사람이 많이 몰린다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세종로나 시청광장도 주변에 상점이 많아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벤트 밀도를 숫자로 계산한 것은 좀 억지스러웠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조금 더 깊게 풀이한 느낌이었다.
남대문은 고려 청자와 무엇이 다른가?
건축은 오브제(object)의 성격이 강한 도자기나 그림과 다르다. 건축은 사람이 들어가고 나오는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재료가 교체되고 복원되고 사용되면서 보존되는 것이 옳다. 남대문은 재료가 오래된 나무이기 때문에 문화재가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생각이 문화재인 것이고, 그 생각을 기념하기 위해서 결과물인 남대문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따라서 오리지널 남대문이 불타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래된 나무가 불에 탔다고 통곡하면서 울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베네치아에 갔을 때 인상 깊었던 모습이 있다. 산 마르코 광장이나 리알토 다리 같은 유서 깊은 건축물에 상점이 다 들어서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들어가지 마시오'란 팻말과 줄을 쳐 놓았을 텐데 이탈리아에서는 아직까지도 건축물의 기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파리의 오르세 역을 개축한 오르세 미술관과 로마의 왕궁을 개축한 루브르 박물관을 예로 들면서 건축 문화재를 박재시켜놓고 우상화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파트와 재개발
알고 보면 우리가 좋다고 그렇게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구경하는 파리도 수백 년 전 당시에 유행하던 집합 주거로 채워진 도시일 뿐이다. 지금 보기에 끔찍한 판상형 아파트로 가득 찬 강남의 한강변도 100년, 200년 지나고 나면 전 세계에서 비행기를 타고 구경하러 올 20세기를 대표하는 도시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몇 년 전에 이탈리아를 갔을 때 집들이 예쁘긴 하지만 다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보는 집들은 20~30년 전에 지은 집들이고 이탈리아의 집들은 100~200년 전의 집들인 것 말고 큰 차이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딱 나오니까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제주도의 컴퓨터 박물관을 가보면 초창기 애플 컴퓨터부터 최신형 아이폰까지 전시되어 있다. 현재의 최신 기술이 지나고 나면 유물이 되는 것이다.
위에 소개한 내용 외에도 건축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다. 사진도 보면서 보는 것이 좋으므로 전자책 뷰어보다는 태블릿이나 종이책으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요즘 건물은 재산이다 보니 용적률만 신경 써서 네모 반듯한 건물이 대부분인데 주변 환경과 어우러질 수 있는 다양한 건축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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