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티미아, 즉 감정 표현 불능증은 아동기에 정서 발달 단계를 잘 거치지 못하거나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 혹은 선천적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에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에는 감정 중에서도 특히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한다. 다만 공포, 불안감 등과 관련된 편도체의 일부는 후천적인 훈련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선천적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게 태어난 윤재의 이야기이다.
첫 번째 사건은 여섯 살 때 일어났다.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오던 윤재는 골목에서 맞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윤재는 근처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 아저씨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문제는 그 아이가 아저씨의 아들이었다는 것이었는데, 조금 더 진지하게 말했으면 아이가 살았을 수도 있다며 윤재를 원망했다. 이 사건 이후 윤재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아이라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두 번째 사건은 열여섯 살 때 일어났다. 윤재의 생일인 크리스마스이브에 윤재, 엄마, 할멈은 시내로 생일을 축하하러 나간다. 거기서 한 낯선 남자의 칼에 할멈은 그 자리에서 죽고 엄마는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 윤재는 은빛 머리의 중년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남자는 아픈 아내를 위해 윤재에게 어릴 적 잃어버린 아들 역할을 해 줄 것은 요청한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아들이 윤재의 인생을 바꾼 괴물, 곤이였다.
윤재는 엄마가 하던 헌책방을 이어서 운영하기로 한다. 그리고 위층에 사는 심 박사의 도움으로 고등학교에도 진학했는데 거기서 전학생 곤이를 만난다. 윤재와 곤이는 곤이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되는데, 윤재가 자신인 척을 했다는 것을 안 곤이는 윤재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하지만 윤재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곤이는 매일 윤재를 찾아오고 둘을 친구가 된다.
도라는 곤이의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아이였다. 책방이 점점 어려워지자 윤재는 문을 닫기로 결정하고, 책들을 학교 도서부에 기증하기로 한다. 그곳에서 육상부인 도라를 만나게 되고 점점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수학여행에서 학생들의 지갑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문제아인 곤이가 의심을 받게 된다. 가족과 친구를 포함한 모두가 자신을 의심하는 상황에 상처 받은 곤이는 더 엇나가기 시작하고, 비극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새벽녘이 되도록 의식이 또렷했다. 곤이한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네 엄마 앞에서 아들인 척해서. 내게 다른 친구가 생긴 걸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안 그랬을 거라고,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윤재는 곤이를 찾아 나섰고 항구 도시의 작은 가게에서 곤이를 발견한다. 윤재는 그곳에서 곤이의 소년원 선배인 철사를 만나고 곤이를 데려가겠다고 한다. 철사는 곤이에게 칼을 쥐어주고 써 보라고 한다. 하지만 곤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철사는 곤이의 칼을 빼앗아 윤재의 가슴을 찌른다. 곤이가 달려와 윤재를 끌어안고 울먹였다. 윤재는 곤이에게 지금까지 상처 입힌 사람들에게 사과하라는 말을 하고 정신을 잃는다.
다시 깨어났을 때 윤재는 병원에 있었다. 심 박사는 곤이와 도라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윤재의 표정이 다양해졌다며 다시 MRI를 찍어보자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선물이라며 휠체어를 밀고 들어온다. 윤재가 누워 있는 동안 거짓말처럼 엄마가 깨어난 것이다. 엄마를 보며 윤재는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또 웃는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윤재의 캐릭터에 있는 것 같다. 감정 표현 불능증에 걸린 윤재의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던 말과 행동들을 누군가는 특별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반부의 윤재와 후반부의 윤재의 캐릭터가 많이 다른데 그 변화 과정을 거부감 없이 잘 서술한 것 같다. 너무 극단적인 캐릭터와 사건 전개, 결말의 뜬금 해피엔딩은 조금 아쉬웠다. (아래 작가의 말을 보니 결말은 수긍이 되었다.)
좀 식상한 결론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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