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봤을 때는 유명한 거짓말쟁이들을 소개하는 정도의 내용일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거짓말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생물학적 등등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출판사에서 제목을 마음대로 바꿨나 해서 원제를 봤더니 Born Liars, 정직한 번역이었다. 1장을 다시 봤더니 제목이 이해가 되었는데 우리는 모두 '타고난' 거짓말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샐리가 바구니를, 앤이 상자를 가지고 있는데 샐리가 구슬을 바구니에 넣고 방에서 나간다. 샐리가 나가자 앤은 샐리의 바구니에서 구슬을 꺼내서 자신의 상자에 넣는다. 다시 돌아온 샐리는 구슬을 찾기 위해 어디를 살펴볼까?
라는 실험에서 세 살 배기들은 앤의 상자를 살펴본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즉 내가 믿는 것과 다른 사람이 믿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능력이 네 살 무렵 생기고 그제야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데 이 능력은 아직도 완전하게 습득되진 않았나 보다. '나라면 맘에 들었을 때 이렇게 행동했을 거야. 그런데 너는 저렇게 행동했으므로 맘에 들지 않았던 거지.'라는 논리를 아직도 구사하는 걸 보면.
윌리엄 제임스는 감정에서 생리반응이 나온다기보다는 생리반응으로부터 감정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두려워서 곰으로부터 달아나는 게 아니라, 곰으로부터 달아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흔히 얼굴이 빨개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피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특징들을 기계로 잡아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거짓말 탐지기인데 사실상 효용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주목받고 있다는 걸 느끼면 얼굴이 빨개지며 땀이 나기 시작하고 얼굴이 빨개졌다는 걸 알게 되면 더더욱 얼굴이 빨개지지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눈을 피하는 건 원래 그렇고.
사실 우리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어린 시절과 관련된 기억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어렸을 때 원래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기억을 불러일으킨 나중 시기에 나타난 어린 시절을 보여준다.
어렸을 때 살던 집이 언덕 꼭대기에 있었는데 언덕을 중간쯤 내려가면 모퉁이에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자주 뛰어내려 갔던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 속에서 나는 뛰어 내려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있다. 결국 이건 내 실제 기억이 아니라 나중에 재조합된 기억이라는 이야기다. 기억이라는 것은 뇌가 만든 것이니까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딴 소리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교구 사제는 다른 보좌신부를 보내 문을 열어주라고 한다. 존은 보좌신부에게 교구사제가 있는지 묻는다. 보좌신부는 그가 없다고 대답한다. 이것은 확실히 진실이 아니지만 교회의 시각에서는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좌신부가 존에게 교구 사제가 없다고 말할 때 마음속에서 '당신에게는'이라는 말을 유보했기 때문이다.
성경의 십계명 중에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집 앞에 살인자가 찾아와서 친구가 어디 있는지 묻는다면?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심리유보'라는 것이 생겼다고 한다. 예를 들면 '나 회사 때려치울 거야'라고 말하면서 조용히 앞에 '60살에'를 덧붙이면 된다는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교리보다 목숨을 중시하라는 관점에서 시작되었을 것 같지만 면죄부처럼 악용되는 사례도 많이 있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생각보다 많이 어렵지만 시간 날 때 천천히 읽어 볼 만한 책인 것 같다.
'책 >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먹는 법 - 김이경 (0) | 2020.10.07 |
---|---|
열한 계단 - 채사장 (0) | 2020.10.04 |
센서티브 - 일자 샌드 (0) | 2020.09.25 |
어쩌다 한국인 - 허태균 (0) | 2020.09.22 |
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0) | 2020.09.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