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팅에그의 에그2호가 쓴 포토에세이이다. 스탠딩에그가 에그1호, 에그2호, 에그3호로 구성된 그룹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필명까지 에그2호로 쓰니 느낌이 묘했다. 노래는 많이 들었지만 얼굴을 본 적은 없어서 책 표지와 초반에 나오는 여자분이 에그2호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읽다보니 에그2호는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토에세이라고 해서 이병률 작가의 책처럼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대한 생각을 적은 것은 아니고 글을 쭉 쓰고 예쁜 사진이 군데군데 삽입된 느낌의 책이다.
장애는 초구 볼과 같은 겁니다. 타자와의 승부를 '원 볼, 노 스트라이크'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뿐이에요. 아직 제겐 던질 수 있는 공이 다섯 개나 남아 있습니다. 경기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포수 미트에 집중하고, 거기다 공을 집어넣으면 그만입니다. 초구 볼을 원망하는 대신 나머지 다섯 개의 공을 더 잘 던질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야구이자 인생입니다.
스탠딩에그의 노래에서도 느꼈지만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저자는 굉장히 섬세하고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중반부터 등장하는 여자친구는 주관이 뚜렷하고 결단력 있는 성격이라서 둘이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 인터뷰를 찾아보니 아마도 그 여자친구와 결혼을 한 것 같다.) 여자친구와의 에피소드가 몇 개 등장하는데 보는 내내 웃음을 짓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이 둘처럼 예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 마지막 데스 스타
여자친구에게 68만원짜리 데스 스타를 선물받고 시간이 없어 조립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자친구는 일 때문에 뉴욕에 가게 된다. 여자친구를 보내고 데스 스타를 조립하던 에그2호는 문득 이 가격이면 진짜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가 그녀와 함께 보내는 하루가 훨씬 더 아름다웠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뉴욕에서 밤을 보내고 있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년 아모리 쇼는 나랑 함께 가자. 그때 비행기표는 네 것까지 두 장 다 내가 살게."
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받아쳤다.
"왜, 지금이라도 데스 스타 타고 오지그래?"
피터 도이그, 좋아하세요?
여자친구와 막 사귀기 시작했을 무렵, 피터 도이그를 좋아하냐는 그녀의 물음에 잘 보이고 싶어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었다. 2년 후 갤러리에서 피터 도이그의 '카누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에그2호의 등 뒤에서 여자친구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피터 도이그를 좋아하시나봐요?"
"네,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거든요."
에필로그
여자친구와 사귀기로 하고 몇 번의 데이트를 했을 무렵, 저자는 자신의 잘 짜여진 일상을 그녀에게 꼼꼼히 설명했다. 이처럼 완벽하고 아늑한 삶을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던 저자의 얘기를 가만히 듣던 그녀는 갑자기 실소를 터뜨렸다.
"풋, 잠깐만. 그렇게 정해놓은 게 많으면 네 일상에는 새로운 일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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