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의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여행기이다. 아테네와 이스탄불은 가 보지 않은 곳이라 새로운 도시를 여행한다는 느낌으로, 로마와 파리는 가 본 곳이라 내가 느낀 것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다는 느낌으로 읽으니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각 도시마다 여행한 장소의 지도가 한 장 있긴 하지만, 글의 성격 자체가 에세이인지라 자세한 경로나 장소를 안내하지는 않는다.
유럽의 유적지를 갔을 때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복원할 때 티를 낸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도 그걸 느꼈었고 파르테논 신전의 사진 또한 그걸 알 수 있었다. 한 건물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여러 양식으로 구성된 것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다. 올림픽 주경기장을 체육 수업 운동장으로 쓰는 그리스 아이들을 보면서 문화재란 유리 벽 안에 곱게 보존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가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로마는 도시 자체가 유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바티칸이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천지창조를 보고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그 압도적인 스케일에 놀라게 된다. 한쪽 구석에 잘 보존된 피에타나 중앙에 놓은 예수의 증거를 보면 없던 신앙도 생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는 이 공간이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이지, 신의 숨결이나 예수의 고뇌를 감지하기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라고 평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성 베드로 대성당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노동자를 생각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루브르 박물관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디오 가이드도 없이 그 큰 곳을 돌아다니다 결국은 지쳐서 모나리자를 향해 직진했던 기억이 있다. 유시민 작가는 이 루브르 박물관을 문화재 포로수용소라고 지칭했다. 외규장각 도서 얘기를 꺼냈을 때, 루브르에서 이걸 떠올리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유시민 작가는 파리가 지구촌 문화수도가 될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에펠탑이라고 이야기한다. 과학혁명의 산물이자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건물, 그런 건물이 랜드마크인 것만으로도 사피엔스의 문화수도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시 파리에 간다면, 에펠탑 앞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와인을 팔던 그분에게 와인을 한 병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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